튜브톤 스튜디오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소리는 블루스브레이커스와 크림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뮤지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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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소리는 블루스브레이커스와 크림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Q. 에릭 클랩튼은 왜 잘되고 있던 야드버즈를 떠났나요?

1965년 야드버즈는 For Your Love를 계기로 더 넓은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었지만, 클랩튼은 그 무렵 밴드의 팝 지향적인 변화에 불만을 품고 떠났습니다. 성공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음악과 밴드가 가려는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더 큰 밴드가 아니라 당시 영국 블루스의 중심에 있던 존 메이올(John Mayall)이었습니다.

Q. 블루스브레이커스 시절 클랩튼의 소리는 어떤 장비에서 나왔나요?

이 시기에 기타 역사에서 유명한 조합인 깁슨 레스폴(Gibson Les Paul)과 마샬(Marshall)이 만들어졌습니다. 1966년 3월 런던 데카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7월 22일 발매된 Blues Breakers with Eric Clapton, 흔히 비노(Beano) 앨범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중반 클랩튼이 레스폴과 마샬을 밀어붙여 만든 소리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강렬했습니다.

Q. 클랩튼은 앰프를 어떻게 사용했나요?

단순히 좋은 기타와 좋은 앰프를 만난 것이 아니라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자기 연주의 일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피킹을 강하게 넣었을 때 앰프가 어떻게 받아주는지, 볼륨을 밀었을 때 음이 어떻게 두꺼워지는지, 한 음을 길게 끌었을 때 어디까지 버텨주는지. 기타를 치는 손과 앰프의 소리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시기 초기 마샬에서 KT66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자료실의 기타용 진공관 시리즈 #7 KT66 편과 빈티지 명관 복원 6편(Mazda 실버 플레이트 ECC83 + GEC/M-OV KT66)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Q. 크림(Cream)은 어떻게 결성됐나요?

1966년 5월 블루스브레이커스 공연에 함께한 진저 베이커(Ginger Baker)가 새 밴드를 제안했고, 클랩튼은 베이스에 잭 브루스(Jack Bruce)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베이커와 브루스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결국 세 사람이 모였습니다. 7월 블루스브레이커스의 마지막 예정 공연 바로 다음 날 리허설을 시작했고, 같은 달 말 첫 무대에 올랐으며 12월에 첫 앨범 Fresh Cream이 나왔습니다.

Q. 크림에서 클랩튼의 기타는 무엇이 달라졌나요?

존재감이 강한 연주자 세 명이 모인 밴드라 베이스는 기타 뒤에 머물지 않았고 드럼도 박자만 지키지 않았으며, 세 악기가 서로 밀고 당겼습니다.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자기 소리를 만들었다면 크림에서는 그 소리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시험했습니다. Sunshine of Your Love에서는 리프가 곡 전체를 끌고 가고 기타 소리 자체가 음악의 인상을 결정합니다. 1967년 필모어를 시작으로 한 미국 투어, 1968년 Wheels of Fire와 골드 레코드까지, 블루스 음반을 좇던 영국 청년의 기타를 미국 관객이 들으러 오게 됐습니다.

Q. Clapton is God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왔나요?

훗날 만들어진 전설이 아니라 블루스브레이커스 시절 런던 이즐링턴 지하철역 벽에 등장한 낙서에서 시작됐다고 클랩튼 공식 전기에서도 설명합니다. 당시 젊은 기타리스트들이 클랩튼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가장 간단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Q. 크림은 왜 오래가지 못했나요?

1968년 7월 해체 소식이 보도됐고 그해 11월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습니다. 결성부터 해체까지 2년 남짓이었습니다. 멤버 사이의 갈등과 길어지는 즉흥연주에 대한 피로도 있었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클랩튼 자신이었습니다. 세상이 클랩튼처럼 기타를 치고 싶어 하던 바로 그때, 그는 화려한 솔로 대신 각 악기가 자리를 지키며 노래 전체를 살리는 더 밴드(The Band)의 Music from Big Pink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