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1968년 클랩튼은 왜 성공한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어 했나요?
크림은 세계적인 밴드가 됐고 클랩튼의 기타는 록 기타의 새로운 기준이 됐지만, 그의 귀를 붙잡은 것은 더 밴드(The Band)의 Music from Big Pink였습니다. 누가 가장 화려하게 연주하는지 경쟁하지 않고, 기타가 곡의 앞을 독차지하지도 않으며, 베이스와 드럼, 건반과 목소리가 제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노래를 만드는 음악이었습니다. 세상은 클랩튼처럼 치고 싶어 했지만 그는 기타가 한발 뒤로 물러난 음악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Q.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는 왜 앨범 한 장으로 끝났나요?
크림 이후 스티브 윈우드와 편하게 음악을 만들어보려던 자리에 진저 베이커와 릭 그레치까지 합류하면서 또 하나의 슈퍼그룹이 됐습니다. 1969년 6월 7일 하이드 파크 첫 공연부터 엄청난 관객이 몰렸고 앨범도 영국과 미국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클랩튼은 크림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비슷한 기대 속에 서게 된 셈이었습니다. 미국 투어도 순탄하지 않았고 밴드는 몇 달 만에 사라졌습니다.
Q. 딜레이니 앤 보니(Delaney & Bonnie)와의 활동은 어떤 의미였나요?
블라인드 페이스의 마지막 북미 공연 사흘 뒤인 1969년 8월 27일, 클랩튼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딜레이니 앤 보니의 녹음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크림의 중심이던 사람이 남의 밴드 뒤에서 기타를 친 것입니다. 미국 남부의 소울, R&B, 가스펠, 블루스가 섞인 이 음악에서는 모든 시선이 클랩튼에게 쏠리지 않았고 기타는 노래 속에 자연스럽게 섞였습니다. 딜레이니 브램릿의 권유로 노래를 시작하고 작곡도 늘었으며, 1970년 첫 솔로 앨범으로 이어졌습니다. 크림에서 기타가 음악을 끌고 갔다면, 이제 기타가 노래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Q. 데릭 앤 더 도미노스라는 이름에는 왜 클랩튼의 이름이 없나요?
1970년 여름 결성된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는 바비 휘트록, 칼 레이들, 짐 고든 등 딜레이니 앤 보니와 함께했던 연주자들에 클랩튼이 들어간 밴드였습니다. 몇 년 전 Clapton is God이라는 낙서가 등장했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 이름조차 밴드 앞에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계속 그를 앞으로 끌어내려 했고, 클랩튼은 계속 뒤로 가려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어도 어디에 머물고 싶지 않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Q. 레일라(Layla)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클랩튼은 친구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e Boyd)를 사랑하게 됐고, 쉽게 정리할 수 없는 그 감정이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에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1970년 8월 26일 마이애미 크라이테리아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시작했고, 다음 날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듀안 올맨(Duane Allman)이 합류했습니다. 누가 앞에 서고 누가 받쳐주는 관계가 아니라, 클랩튼의 기타와 올맨의 슬라이드 기타가 부딪히고 받아치며 음악의 긴장을 끌어올렸습니다. 앨범은 1970년 11월 더블 앨범으로 나왔습니다.
Q. 레일라에 담긴 아이러니는 무엇인가요?
클랩튼은 크림의 성공을 더 크게 만드는 길로 가지 않고, 기타가 음악을 지배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섞여 연주하고 노래하며 마침내 이름까지 밴드 뒤로 숨겼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지워가던 끝에서 오히려 가장 개인적인 음악인 레일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에릭 클랩튼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는 그가 다른 이름으로 만든 이 곡이, 평생 에릭 클랩튼을 따라다니는 노래가 됩니다. 하지만 데릭 앤 더 도미노스도 오래가지 못했고, 클랩튼 자신도 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