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에릭 클랩튼은 왜 결국 다시 블루스로 돌아왔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뮤지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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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은 왜 결국 다시 블루스로 돌아왔나요?

Q. 1990년대 초 클랩튼의 음악을 바꾼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새 기타나 앰프가 아니라 음악 밖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1991년 3월 20일 네 살이던 아들 코너(Conor)가 뉴욕의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마음을 몇 문장으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고, 실제 사람의 상실을 극적인 장면으로 소비해서도 안 됩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한동안 사람들 앞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기타를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Q.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에서 기타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젊은 시절 클랩튼의 기타는 마샬을 밀어붙이고 긴 서스테인과 큰 음량으로 공간을 채우며, 때로 목소리보다 먼저 자신을 드러내는 악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곡에서 기타는 뒤로 물러나 무엇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말해야 할 만큼만 말합니다. 기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타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진 것입니다.

Q. 1970년의 레일라와 1992년 언플러그드의 레일라는 어떻게 다른가요?

1992년 MTV Unplugged에서 클랩튼은 거대한 앰프 없이 1939년산 마틴 000-42를 들고 앉아 레일라를 다시 연주했습니다. 1970년의 레일라가 리프부터 감정을 감추지 않고 앞으로 쏟아지는 조급한 노래라면, 22년 뒤의 레일라는 템포를 늦추고 리듬을 바꿔 한때의 격렬한 감정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봅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가 아니라, 1970년에는 아직 현재였던 노래가 1992년에는 지나온 시간이 됐다는 차이입니다. 두 곡을 이어서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Q. 프롬 더 크레이들(From the Cradle)은 어떤 앨범인가요?

1994년 클랩튼은 자신이 만든 옛 노래가 아니라 자신을 만든 음악으로 돌아갔습니다. 제목 그대로 요람에서부터 듣고 따라 치던 미국 블루스, 머디 워터스, 프레디 킹, 로웰 풀슨, 오티스 러시, 윌리 딕슨과 연결되는 곡들을 다시 꺼낸 앨범입니다. 젊은 클랩튼이 블루스를 들으며 자기 소리를 만들었다면, 1994년의 클랩튼은 이미 만들어진 자기 소리로 블루스를 다시 연주했습니다. 방향이 반대가 된 셈입니다.

Q. 블루스로 돌아가면서 옛 장비와 옛 소리도 되돌렸나요?

그럴 이유가 없었습니다. 클랩튼은 1930~50년대 블루스를 박물관의 유물처럼 복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기타와 앰프, 녹음 방식이 변했고 무엇보다 클랩튼 자신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마샬로 미국 블루스를 크고 거친 소리로 바꿨고, 이후 펜더 계열 앰프와 여러 기타를 거쳤습니다. 음악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과 과거의 소리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블루스와 함께 기타 앰프의 소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자료실의 진공관과 함께한 기타 앰프 히스토리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Q. 에릭 클랩튼 시리즈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미국 블루스에 빠졌던 청년은 그 음악을 더 크게 연주했고, 크림을 만들고 떠났으며, 블라인드 페이스와 데릭 앤 더 도미노스를 거치며 기타도 앰프도 음악도 계속 바꿨습니다. 성공한 소리가 생길 때마다 머물 수 있었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고, 수십 년을 돌아 1994년에 다시 꺼내 든 것은 자신이 기타를 들게 만든 블루스였습니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지만 같은 사람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로버트 존슨의 음악을 파고든 시간은 5부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