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지미 페이지는 작은 수프로(Supro) 앰프로 어떻게 레드 제플린의 거대한 소리를 만들었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뮤지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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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페이지는 작은 수프로(Supro) 앰프로 어떻게 레드 제플린의 거대한 소리를 만들었나요?

Q. 레드 제플린 I에서 페이지는 어떤 장비를 썼나요?

흔히 떠올리는 레스폴과 거대한 마샬이 아니라 1959년형 펜더 텔레캐스터와 작은 수프로(Supro) 콤보 앰프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레드 제플린 I의 기타는 전혀 작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엄청나게 큽니다.

Q. 페이지의 수프로는 어떤 앰프였나요?

수프로는 미국 밸코(Valco) 계열에서 만들어진 브랜드이고, 페이지의 앰프는 1950년대 말 소형 진공관 콤보였습니다. 밴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망가져 수리를 거치면서 원래 상태와 달라졌고, 훗날 실제 앰프를 조사했을 때 프리앰프에 멀라드 ECC83, 출력단에 GE 6L6, 정류부에 멀라드 GZ34가 들어 있었으며 스피커 등도 오리지널과 달랐습니다. 매장에서 출고된 상태 그대로의 수프로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수프로 계열 앰프 성격과 진공관에 따른 변화는 자료실의 진공관 튜닝 가이드 #15 Supro Delta King 12 편에서 따로 다룹니다.

Q. 왜 깁슨이 아니라 텔레캐스터와 조합했나요?

페이지는 이 앰프가 텔레캐스터와 아주 잘 맞았고, 깁슨 기타를 연결하면 당시 세션 작업에 쓰기에는 오버드라이브가 너무 강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무조건 많이 찌그러지고 두꺼운 소리를 원했다면 텔레캐스터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작은 수프로를 강하게 밀면서도 피킹의 앞부분이 살아 있고 기타가 빠르게 튀어나오는 조합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Q. Communication Breakdown에서 무엇을 들어야 하나요?

첫 리프부터 기타가 앞으로 튀어나오지만 게인이 많아서 공격적인 것이 아닙니다. 피킹이 시작되는 순간이 분명하고, 코드를 빠르게 몰아쳐도 음의 앞부분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솔로에서는 복스 와우 페달을 밟았다 놓았다 하지 않고 한 위치에 세워 필터처럼 써서 기타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옵니다. 저음과 게인으로 화면 전체를 덮기보다 피킹의 윤곽이 살아 있고 리프가 밴드 사이를 뚫고 나오는 소리입니다.

Q. 수프로만 있으면 레드 제플린 I의 소리가 나나요?

아마 페이지라면 웃었을 것입니다. 그는 세션맨 시절부터 앰프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과 레코드에서 크게 들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어디에 놓느냐, 앰프와 마이크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녹음된 소리가 달라지고, 페이지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거리였습니다.

Q. 거리가 깊이를 만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실제 공간에서 듣는 소리는 스피커에서 귀로 곧장 오는 소리만이 아니라 벽과 바닥, 천장을 거쳐 조금씩 다른 시간에 도착하는 소리가 섞인 것입니다. 마이크를 스피커에 바짝 붙이면 직접음이 강하게 잡히고, 뒤로 물리면 방의 소리가 녹음에 들어오면서 기타가 단순히 커지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깊이가 생깁니다. 페이지는 이를 거리가 깊이를 만든다(Distance makes depth)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이크 위치에 따른 녹음의 차이는 자료실의 스페셜 시리즈 #2 스튜디오 마이크 이야기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Q. 페이지는 드럼과 밴드 전체도 같은 방식으로 녹음했나요?

네. 세션맨 시절 그는 작은 부스에서 엄청난 힘으로 연주한 드럼이 마이크를 너무 가까이 붙인 탓에 공간이 사라져 작게 녹음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레드 제플린에서는 반대로 마이크를 뒤로 물려 존 본햄의 드럼이 방을 울릴 공간을 남겼고, 수프로도 스피커 앞 소리만이 아니라 방 안에서 퍼지는 소리까지 녹음했습니다. 녹음 후 EQ로 뜯어고치기 전에 마이크 위치부터 찾았고, 악기 사이에 새어 드는 소리도 방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초기 레드 제플린은 악기 하나하나가 또렷한데도 따로 놀지 않고, 악기 사이에 공간이 있습니다.

Q. 같은 텔레캐스터와 수프로인데 왜 곡마다 소리가 다른가요?

Communication Breakdown은 거칠게 달려들고, You Shook Me는 분위기가 확 달라지며, Dazed and Confused에서는 기타가 공간 안을 돌아다니는 듯하고, Good Times Bad Times에서는 밴드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또 다릅니다. 페이지에게 좋은 장비는 색깔 하나만 강하게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라, 치는 방법과 마이크, 공간을 바꾸면 다른 표정을 내는 장비였습니다. 어쩌면 레드 제플린 I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수프로가 아니라 그 앞에 있던 페이지의 귀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연장이 커지면서 실제로 큰 무대를 울릴 앰프가 필요해졌고, 이 이야기는 3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