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지미 페이지는 왜 작은 수프로를 떠나 거대한 마샬로 갔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뮤지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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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페이지는 왜 작은 수프로를 떠나 거대한 마샬로 갔나요?

Q. 녹음실에서 통하던 수프로를 왜 계속 쓰지 않았나요?

녹음실에서는 앰프를 밀고 마이크를 움직이고 방의 울림을 받아들이면 작은 앰프도 레코드에서 얼마든지 크게 들리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레드 제플린이 성공하면서 관객이 수천 명으로 늘었고, 마이크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진짜 큰 소리가 필요해졌습니다.

Q. 페이지는 처음부터 마샬을 썼나요?

아닙니다. 초기 레드 제플린 시절에는 복스 계열의 대출력 앰프도 썼고, 레드 제플린 II의 Whole Lotta Love에서는 복스 슈퍼 비틀(Super Beatle) 계열 앰프와 리켄배커 트랜소닉(Rickenbacker Transonic) 캐비닛을 사용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1970년 로열 앨버트 홀 공연 영상에서는 하이와트(Hiwatt) 앰프가 보입니다. 수프로에서 마샬로 바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여러 장비를 거쳤습니다.

Q. 결국 마샬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외로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공연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투어 중 앰프가 고장 나면 당장 다음 도시 공연이 문제였습니다. 로드 매니저는 다른 기타리스트들도 많이 쓰니 어디서든 구하기 쉽다며 계속 마샬을 권했고, 하이와트도 쓰던 페이지는 결국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소리뿐 아니라 내일 공연에서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장비를 들고 세계를 도는 뮤지션에게는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대형 무대를 대표한 마샬 계열의 소리는 자료실의 진공관 튜닝 가이드 #6 Marshall Plexi 편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Q. 넘버 원(Number One) 레스폴은 어떻게 페이지의 기타가 됐나요?

1969년 미국 투어 중 제임스 갱(James Gang)의 기타리스트 조 월시(Joe Walsh)가 1959년형 깁슨 레스폴 스탠더드를 권했습니다. 이미 텔레캐스터와 레스폴 커스텀이 있었던 페이지는 처음부터 달려들지 않았지만, 직접 쳐보고 생각이 바뀌어 500달러에 샀습니다. 이것이 훗날 페이지를 상징하는 넘버 원 레스폴입니다.

Q. 레스폴은 텔레캐스터를 대신한 업그레이드였나요?

아닙니다. 큰 무대에서는 텔레캐스터의 피드백을 다루는 문제가 있었고 페이지는 레스폴에서 피드백을 조금 더 다루기 편하다고 느꼈습니다. 또 두 번째 앨범을 첫 앨범과 다르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새 레스폴을 Whole Lotta Love와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 녹음에 넣어봤고, 결과가 마음에 들어 첫 앨범이 텔레캐스터의 질감이었다면 두 번째 앨범은 레스폴의 질감을 중심으로 갔습니다. 텔레캐스터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소리를 원했던 것입니다.

Q. 페이지의 마샬은 일반 마샬과 무엇이 달랐나요?

페이지는 100와트 마샬 슈퍼 베이스(Super Bass)를 앰프 기술자 토니 프랭크(Tony Frank)에게 맡겨 자기에게 맞게 개조했고, 훗날 가장 좋았던 앰프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단순히 게인을 더 올리려던 것이 아니라 큰 무대를 밀어줄 힘과 함께 손에서 나오는 강약이 그대로 보이는 앰프가 필요했습니다. 볼륨만 커지고 강약이 사라지면 페이지가 원하는 앰프가 아니었습니다.

Q. 페이지의 마샬에는 EL34가 아니라 6550이 들어 있었나요?

마샬 하면 흔히 EL34를 떠올리지만, 토니 프랭크가 손본 대표적인 슈퍼 베이스는 훗날 복원 과정에서 GE 6550 출력관으로 개조된 구성이 확인됐습니다. 출력관 하나로 페이지의 소리를 설명하거나 같은 앰프를 만들 수는 없지만 방향은 흥미롭습니다. 더 빨리 찌그러지는 것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 큰 힘과 함께 연주의 강약을 받아줄 여유를 원했다는 점에서, 작은 수프로와 전혀 다른 앰프인데도 페이지가 요구한 조건은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6550이 어떤 출력관인지는 자료실의 기타용 진공관 시리즈 #12 출력관 6550 편에서 따로 다룹니다.

Q. 장비가 바뀐 뒤 페이지의 연주에서 무엇을 들어야 하나요?

1970년 로열 앨버트 홀 공연을 Communication Breakdown과 비교해보면 소리는 훨씬 크고 두꺼워졌지만 수프로와 같은 음색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오른손을 들어보면 살짝 건드릴 때와 세게 밀 때 기타가 똑같이 나오지 않고, 본햄이 밀고 들어오면 같이 달려들었다가 공간이 열리면 물러납니다. 페이지는 마샬을 썼지만 마샬에게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기타를 앰프에 바로 연결해 소리가 공간에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다시 치는 것을 좋아했고, 좋은 앰프는 소리를 키우는 상자가 아니라 바로 대답해주는 상대에 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