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지미 페이지(Jimmy Page)의 레드 제플린 기타 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됐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뮤지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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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페이지(Jimmy Page)의 레드 제플린 기타 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됐나요?

Q. 레드 제플린 이전의 지미 페이지는 어떤 기타리스트였나요?

1960년대 중반 런던의 젊은 세션 기타리스트였습니다. 코드 차트 하나를 받아 들고 테이프가 돌면 바로 연주해야 했고, 핑거스타일과 슬라이드, 필요하면 하모니카까지 했습니다. 매번 자기가 좋아하는 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녹음하는 곡에 필요한 소리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페이지는 녹음이 끝나도 엔지니어 옆에서 방의 울림과 악기의 거리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묻고 배웠고, 훗날 이 시절을 기타뿐 아니라 녹음과 프로듀싱까지 익힌 견습 기간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Q. 페이지는 언제부터 프로듀서였나요?

레드 제플린 이후가 아니라 야드버즈 이전부터입니다. 1961년 그는 자기 돈을 들여 크리스 팔로와 선더버즈를 RG 존스 사운드 스튜디오로 데려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12곡을 녹음했고, 이를 사실상 첫 프로덕션으로 회고했습니다. 1966년 야드버즈에 합류한 뒤에는 12현 일렉트릭, 바이올린 활을 시도했고, 1967년 Ten Little Indians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던 브라스 파트를 빼는 대신 집에서 실험하던 백워드 에코로 녹음된 소리 자체를 바꿨습니다. 연주하는 페이지와 녹음하는 페이지가 처음부터 같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Q. 레드 제플린 I에서는 어떤 장비를 썼나요?

흔히 떠올리는 레스폴과 마샬 스택이 아니라 1959년형 펜더 텔레캐스터와 작은 수프로(Supro) 콤보였습니다. 수프로는 미국 밸코 계열 브랜드로, 페이지의 앰프는 1950년대 말 소형 진공관 콤보였는데 밴에서 떨어지는 사고 후 수리를 거쳐 원래 상태와 달라져 있었습니다. 훗날 조사에서 프리앰프에 멀라드 ECC83, 출력단에 GE 6L6, 정류부에 멀라드 GZ34가 확인됐습니다. 페이지는 이 앰프가 텔레캐스터와 잘 맞았고, 깁슨을 연결하면 당시 세션 작업에는 오버드라이브가 너무 강했다고 회고했습니다.

Q. 작은 수프로 앰프로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녹음했나요?

앰프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과 레코드에서 크게 들리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페이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스피커에 바짝 붙이면 직접음만 강하게 잡히지만, 뒤로 물리면 벽과 바닥, 천장을 거쳐 돌아오는 방의 소리가 들어와 앞뒤로 깊이가 생깁니다. 페이지의 표현으로는 거리가 깊이를 만든다(Distance makes depth)입니다. 존 본햄의 드럼도 같은 방식으로 방을 울릴 공간을 남겨 녹음했습니다. 앰프는 작았지만 페이지가 녹음한 공간까지 작았던 것은 아닙니다.

Q. Communication Breakdown에서 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첫 리프부터 기타가 앞으로 튀어나오지만 게인이 많아서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피킹이 시작되는 순간이 분명하고, 빠르게 몰아쳐도 음의 앞부분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솔로에서는 복스 와우 페달을 밟았다 놓았다 하지 않고 한 위치에 세워 필터처럼 써서 기타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옵니다. 저음과 게인으로 화면을 덮기보다 피킹의 윤곽이 살아 있고 리프가 밴드 사이를 뚫고 나오는 소리입니다. 같은 텔레캐스터와 수프로로도 You Shook Me, Dazed and Confused, Good Times Bad Times에서 각기 다른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Q. 페이지는 왜 결국 마샬로 갔나요?

레드 제플린이 성공하며 관객이 수천 명이 되자 마이크 위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실제 큰 소리가 필요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샬은 아니었고, Whole Lotta Love에서는 복스 슈퍼 비틀 계열 앰프와 리켄배커 트랜소닉 캐비닛을, 1970년 로열 앨버트 홀에서는 하이와트를 썼습니다. 마샬로 간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투어 중 앰프가 고장 나도 어디서든 구하기 쉽다는 로드 매니저의 권유였습니다. 좋은 소리뿐 아니라 내일 공연에서도 쓸 수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Q. 넘버 원 레스폴은 어떻게 페이지의 기타가 됐나요?

1969년 미국 투어 중 제임스 갱의 조 월시가 1959년형 깁슨 레스폴 스탠더드를 권했고, 직접 쳐본 페이지는 500달러에 샀습니다. 텔레캐스터를 버린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큰 무대에서 레스폴이 피드백을 다루기 더 편했고 두 번째 앨범을 첫 앨범과 다르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Whole Lotta Love와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에 넣어본 결과가 마음에 들어, 첫 앨범이 텔레캐스터의 질감이었다면 두 번째 앨범은 레스폴의 질감을 중심으로 갔습니다.

Q. 페이지의 마샬은 일반 마샬과 무엇이 달랐나요?

페이지는 100와트 마샬 슈퍼 베이스를 앰프 기술자 토니 프랭크에게 맡겨 자기에게 맞게 개조했고, 훗날 가장 좋았던 앰프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 흔히 떠올리는 EL34가 아니라 GE 6550 출력관으로 개조된 구성이 확인됐습니다. 출력관 하나로 페이지의 소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방향은 흥미롭습니다. 더 빨리 찌그러지는 것만을 노린 것이 아니라 큰 무대를 밀어줄 힘과 함께 연주의 강약을 받아줄 여유가 필요했습니다. 볼륨만 커지고 손의 강약이 사라지면 페이지가 원하는 앰프가 아니었습니다.

Q. 장비가 계속 바뀌었는데 왜 언제나 지미 페이지처럼 들리나요?

Black Dog과 Heartbreaker는 훨씬 두껍지만 리프가 뭉치지 않고 한 음의 시작이 분명합니다. 텔레캐스터일 때는 빠르고 선명했고 레스폴로 바뀌며 몸통이 커졌지만, 장비가 달라져도 피킹이 묻히고 손의 강약이 사라지는 쪽으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선명하지만 얇지 않고, 두꺼워져도 둔해지지 않는 소리입니다. 페이지는 진공관 앰프를 따뜻하다고 설명하기보다 칠 때 진공관 안에서 뭔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이야기했고, 앰프를 기타를 치면 바로 대답하는 상대처럼 대했습니다. 조용함과 큰 소리의 대비, 즉 빛과 그림자(light and shade)도 그 소리의 일부였습니다.

Q. 지미 페이지의 소리를 따라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똑같은 레스폴과 마샬부터 찾는다면 페이지와 정반대로 시작하는 셈인지도 모릅니다. 페이지는 곡이 바뀌면 다른 소리를 찾고, 무대가 커지면 장비를 바꾸고, 앰프를 뜯고, 마이크를 옮기고, 녹음 테이프까지 뒤집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는 레스폴도 마샬도 수프로도 아닌 페이지의 귀였고, 그 귀는 손에서 시작된 소리가 앰프를 지나 방과 밴드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전체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이지에게 브릴톤·뉴톤·비나톤 중 하나의 캐릭터 이름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