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신중현의 기타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되나요?
어쩌면 기타보다 라디오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1950년대 어린 신중현은 부품을 구해 직접 만든 라디오로 AFKN을 들었습니다. 주한미군을 위한 방송이었지만 당시 한국에서 미국 음악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였고, 잡음 사이로 재즈와 미국 대중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한국의 음악 환경은 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신중현의 귀까지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Q. 당시 한국에서 미국 음악은 어떻게 들어왔나요?
음반 한 장이 들어오는 데도 시간이 걸렸고 정식 원판은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으며, 라이선스 음반은 해외 음악을 빠르게 모두 들여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AFKN을 듣고 음악다방을 찾았고, 조금 뒤에는 빽판이라 불린 복제 음반도 중요한 통로가 됐습니다. 빽판은 정식 계약과 제작 과정을 거치지 않아 역설적으로 새 음악이 훨씬 빨리 유통됐고, 1970년대 중후반까지도 이어진 해외 신곡과의 시차를 줄여주는 통로였습니다. 신중현은 그보다 훨씬 앞서 AFKN에 귀를 대고 있었습니다.
Q. 미8군 무대는 신중현에게 어떤 곳이었나요?
학교와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관객이 미군이라 그들이 아는 음악을 제대로 연주해야 했습니다. 공연 중 미군들이 기타 솔로를 요구했는데 정작 신중현은 기타 솔로가 무엇인지 몰라, 밴드리더에게 묻고 악보를 받아 연습한 뒤 다음 공연에서 해봤다는 회고도 있습니다. AFKN을 듣고, 악보를 구하고, 곡을 익혀 무대에 오르면 반응이 바로 돌아왔고, 한 달에 20일 이상 하루 두 차례 공연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제 배운 음악을 오늘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연주해야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Q. 신중현은 좋은 장비를 몰라서 이름 모를 장비를 썼나요?
아닙니다. 미8군에는 당시 일반 한국 음악가가 접하기 어려운 장비가 있었고, 신중현은 큰 미8군 쇼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져온 좋은 장비를 쓸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좋은 기타와 앰프가 어떤 것인지 일찍 경험한 사람이었고, 문제는 미8군 무대를 벗어난 다음이었습니다.
Q. 애드 훠(Add 4)는 왜 오래 이어지지 못했나요?
신중현은 미국 음악을 그대로 연주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한국말로 된 자기 음악을 만들고 싶어 1960년대 중반 애드 훠를 만들었고, 빗속의 여인도 이 무렵 나왔습니다. 한국 최초의 록 밴드 기준에는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한국 록 초창기에서 빼놓기 어려운 밴드입니다. 하지만 당시 시장은 이런 음악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그는 다시 미8군 무대로 돌아갔습니다. 미국 음악을 몰라서가 아니라, 남의 음악을 잘 연주하는 능력과 자기 음악을 만들어 한국 사람에게 들려주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Q. 당시 녹음 환경은 어땠나요?
애드 훠 초기 녹음에 관한 회고에는 휴대용 릴테이프 녹음기에 긴 선을 연결한 마이크 하나만 걸어놓고 밴드가 한 공간에서 연주했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확한 연도는 기록과 기억에 차이가 있지만 열악했던 환경 자체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됩니다. 지미 페이지가 마이크를 스피커에서 얼마나 떨어뜨릴지 고민했다면, 1960년대 한국에서는 마이크 하나로 밴드 전체를 어떻게 받을지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기타 트랙만 줄일 수 없으니 앰프 볼륨, 연주의 힘, 사람과 마이크의 거리로 연주하는 자리에서 균형을 만들어야 했고, 그 조건도 소리의 일부였습니다.
Q. 신중현의 옛 장비는 왜 정확히 알기 어렵나요?
자료가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음악은 AFKN과 원판, 빽판을 통해 비교적 빨리 국경을 넘었지만, 기타와 앰프는 미국에서 새 모델이 나왔다고 다음 주 서울 악기점에 진열되는 시대가 아니었고 고장 나도 같은 부품과 진공관을 바로 주문할 수 없었습니다. 음악은 장비보다 빨리 국경을 넘었고, 귀로는 새 소리를 알지만 손에 쥔 장비는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 속 이름 모를 기타를 무조건 깁슨이나 펜더로 볼 수 없으며, 일본 기타나 미국제 중고, 여러 번 수리·개조된 기타였을 수도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두고, 당시 실제로 무엇을 구할 수 있었는지를 따라가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Q. 신중현과 엽전들과 미인은 어떻게 나왔나요?
1960년대 후반부터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 김추자, 장현, 김정미 등과 작업하며 곡을 쓰고 편곡하고 가수에 맞는 음악을 붙이고 음반 전체의 소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사이키델릭 록과 퍼즈 기타의 흔적도 강해졌지만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한국말과 한국 사람에게 익숙한 선율과 리듬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1973년 기타·베이스·드럼 세 명의 신중현과 엽전들로 돌아갑니다. 크림의 영향을 받은, 편곡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실력 중심의 편성입니다. 이듬해 몇 음 되지 않는데 잊히지 않는 리프 하나가 나왔고, 그것이 미인이었습니다. 미인의 소리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