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신중현의 미인 기타 소리는 어떤 장비로 만들었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뮤지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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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의 미인 기타 소리는 어떤 장비로 만들었나요?

Q. 미인의 기타 소리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장비보다 소리부터 들어봐야 합니다. 미인의 기타는 엄청나게 두껍지 않고 요즘 하이게인처럼 게인을 겹겹이 쌓은 벽도 아니지만 존재감이 강합니다. 첫 리프부터 피킹의 시작이 분명해 음이 부풀어 오른 뒤가 아니라 먼저 툭 튀어나오고, 같은 리프를 반복해도 앞부분이 쉽게 뭉개지지 않습니다. 표면은 매끈한 오버드라이브라기보다 조금 까슬까슬합니다. 퍼즈일 가능성도 있지만, 강하게 민 진공관 앰프와 녹음 과정도 거친 질감을 만들 수 있어 소리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Q. 사진 속 신중현의 기타는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모릅니다. 옛 사진에서는 6연 헤드와 더블 컷어웨이 바디가 스트라토캐스터를 떠올리게 하지만, 픽가드와 픽업, 브리지 주변 구성이 익숙한 스트라토캐스터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모델명을 붙이지 않고, 대신 1970년대 한국 기타리스트가 실제로 어떤 기타를 구할 수 있었는지로 질문을 바꿉니다. 신중현이 깁슨이나 펜더를 몰랐을 리 없고, 문제는 서울에서 구할 수 있었느냐와 살 수 있었느냐였습니다.

Q. 당시 일본 기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1960~70년대 일본에는 가이아톤(Guyatone), 테스코(Teisco) 등 상당한 규모의 전기기타 산업이 있었습니다. 미국 기타의 영향을 받았지만 어느 한 유명 모델의 복제라고 하기 어려운 독특한 바디, 서너 개의 픽업, 잔뜩 붙은 스위치와 노브를 가진 기타가 많았고, 지금은 이런 악기 일부를 비자르 기타(Bizarre Guitar)라고 묶어 부르거나 수집합니다. SG처럼 생겼으니 깁슨, 스트랫처럼 보이니 펜더라고 접근하면 실제로 존재했던 수많은 기타를 처음부터 지워버리게 됩니다. 신중현이 특정 일본 브랜드를 썼다는 증거가 아니라, 당시 선택할 수 있었던 범위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Q. 1974년에 신중현이 접할 수 있었던 퍼즈는 무엇이었나요?

인터넷으로 사용기를 읽고 주문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당시 동아시아 시장을 봐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여러 회사가 퍼즈와 와우를 만들었고, 가이아톤의 1970년대 카탈로그에는 와우와 퍼즈, 둘을 한 상자에 넣은 제품도 있었습니다. 신에이(Shin-ei)도 여러 퍼즈와 와우를 생산했고 다른 회사 이름으로 팔린 제품도 많았으며 테이프 에코까지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확인된 사실이 아닌 추리입니다. 다만 미인의 기타는 거친데 피킹이 죽지 않아, 퍼즈가 있었다면 퍼즈 하나로 소리를 다 만든 것이 아니라 앰프의 반응을 죽이지 않는 범위에서 거친 질감을 더했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퍼즈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Q. 신중현의 마샬은 지금도 남아 있나요?

네. 기타도 퍼즈도 물음표지만 1974년형 마샬 슈퍼 리드(Marshall Super Lead)는 실물이 남아 있습니다. 1974년 서울에서 영국제 마샬은 누군가 실제로 가져와야 하고, 비싸고, 고장 나면 고쳐야 하며, 진공관이 나가면 새 관도 구해야 하는 물건이었습니다. 마샬을 가지고 있는 것과 계속 쓸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고, 신중현이 경제적 사정으로 마샬을 처분한 뒤 며칠 동안 마음이 힘들었다고 회고한 것도 그래서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뒷판을 열어보니 가장 궁금한 당시의 진공관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꽂힌 관을 미인 시절의 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Q. 당시 신중현의 마샬에는 어떤 출력관이 들어 있었을까요?

1970년대 마샬 슈퍼 리드라면 출고 시에는 EL34부터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서울에서 실제로 쓰면서 무슨 관을 꽂았느냐입니다. 출력관은 소모품이라 큰 볼륨으로 쓰면 언젠가 교체해야 하는데, 당시 한국에는 미군과 군용 장비 등을 통해 GE, RCA, Tung-Sol 같은 미국계 진공관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유럽산은 상대적으로 귀하고 비쌌습니다. 그래서 후보로 떠오르는 것이 GE 6CA7입니다. 신중현이 실제로 썼다는 기록을 찾은 것이 아니라, 당시 유통 상황에서 마샬을 실제로 굴려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상당히 현실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

Q. 6CA7과 EL34는 같은 관인가요?

당시 시장에서는 호환관처럼 취급되는 일이 흔했고, 6CA7/EL34 또는 EL34/6CA7로 함께 인쇄된 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6CA7과 EL34가 내부적으로 같지는 않으며, 특히 GE의 이른바 빅보틀 6CA7은 전형적인 유럽계 EL34와 내부 구조부터 다릅니다. 그런 관이 들어갔다면 저역의 버팀, 피킹을 받아내는 느낌, 볼륨을 올렸을 때 무너지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음반만 듣고 GE 6CA7이라고 말하는 것은 추리가 아니라 억지이며, 당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던 부품까지 생각해야 그 시절 소리를 제대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Q. 프리앰프 12AX7은 멀라드였을까요?

빈티지 영국 마샬이라면 멀라드를 떠올리기 쉽고 충분히 가능한 조합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 서울에서 미국계 12AX7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조건을 넣으면 GE, RCA, Tung-Sol이었거나 여러 회사의 관이 섞여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확한 제조사는 모르므로 특정 브랜드를 사실처럼 적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국산 멀라드만 당연한 정답으로 놓는 것은 당시 국내 사정을 빼놓은 접근입니다.

Q. 그렇다면 미인의 장비를 정리하면 어떻게 되나요?

확실한 것은 신중현, 엽전들, 미인, 1974년형 마샬 슈퍼 리드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정확한 기타 모델, 퍼즈의 사용 여부와 모델, 당시 꽂혀 있던 출력관과 프리앰프관입니다. 그 빈칸에 당시 시장 상황을 넣으면 일본제 전기기타, 신에이나 가이아톤 같은 일본계 퍼즈, GE 6CA7, 미국계 12AX7이 들어간 시스템이 그려집니다. 기타와 퍼즈는 일본, 앰프는 영국, 진공관은 미국에서 왔을 수 있고 그것을 연주한 사람은 한국의 신중현입니다. 다만 이것은 실제 녹음 장비라는 주장이 아니라 남은 자료와 시장 환경으로 복원해본 가상의 1974년 시스템입니다. 장비가 없던 시대가 아니라 골라 살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