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미인의 기타와 퍼즈, 진공관을 전부 찾으면 신중현의 소리를 알 수 있나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중현의 음악을 조금 더 들어보면 같은 사람이 만든 게 맞나 싶을 만큼 소리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장비를 하나씩 찾을수록 오히려 장비 목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더 분명해집니다.
Q. 미인에서 기타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첫 리프는 음이 많지 않고 복잡한 코드도 빠른 연주도 없지만, 기타가 시작되는 순간 곡 전체가 움직입니다. 노래가 한번 보고 하면 기타가 받고, 두 번 보고 하면 또 받습니다. 보컬 뒤에서 코드만 받치는 것도, 보컬을 밀어내고 혼자 앞에 나오는 것도 아니라 노래와 기타가 계속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기타 소리만 떼어 분석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며, 신중현의 기타는 혼자 있을 때보다 밴드 안에 들어갔을 때 더 많은 일을 합니다.
Q. 신중현은 왜 밴드 전체를 듣는 기타리스트가 되었나요?
처음부터 혼자 기타를 치며 소리를 배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미8군에서는 기타만 잘 쳐서는 안 됐고 밴드가 같이 움직이고 노래가 살고 관객이 반응해야 했습니다. 한국 녹음실에서도 기타를 따로 녹음해 나중에 조절하기 어려워 연주하는 순간부터 균형을 맞춰야 했습니다. 그리고 곧 곡을 쓰고 편곡하고 가수를 찾고 음반 전체의 소리를 생각하게 되면서, 기타리스트의 귀가 프로듀서의 귀로 넓어졌습니다. 그러자 기타 소리도 하나로 고정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Q. 김정미의 NOW와 미인은 어떻게 다른가요?
1973년 김정미의 NOW에서는 기타가 반드시 맨 앞에 서지 않고 보컬 뒤로 물러나거나 리듬과 섞이며, 한 음 한 음의 윤곽보다 음반 전체의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만드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그래도 누가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는 느껴집니다. 미인의 기타를 신중현의 소리로 정의하면 김정미를 설명하기 어렵고, 김정미를 기준으로 잡으면 미인이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질문을 신중현의 소리는 어떤 음색이었나에서 신중현은 소리를 어떻게 만들었나로 바꿔야 이야기가 풀립니다.
Q. 신중현은 왜 한 가지 기타 톤을 고집하지 않았나요?
펄 시스터즈, 김추자, 장현, 김정미, 신중현과 엽전들은 목소리와 노래, 편성이 모두 달랐습니다. 김추자의 목소리 뒤에서 기타가 할 일과 김정미의 음악에서 할 일이 같을 이유가 없고, 기타·베이스·드럼 세 명이 소리를 채워야 하는 엽전들은 기타가 차지할 공간부터 다릅니다. 신중현의 고집은 한 가지 음색을 평생 지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곡이 바뀌면 소리를 바꾸고, 가수가 바뀌면 기타의 자리를 바꾸고, 밴드가 달라지면 편곡을 바꿨습니다. 바뀌지 않은 것은 항상 음악이 먼저였다는 점입니다.
Q. 결국 소리는 손에서 나온다는 뜻인가요?
그 말로 끝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생략됩니다. 손이 중요하다고 기타가 아무거나여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퍼즈를 넣으면 앰프로 들어가는 신호부터 달라지고, 출력관이 달라지면 앰프가 피킹을 받아내고 큰 신호에서 무너지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중현도 좋은 장비를 원했고 미8군에서 좋은 장비를 경험했으며 귀한 마샬도 손에 넣었습니다. 다만 순서는 분명합니다. 장비가 신중현에게 음악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신중현이 자기 음악에 필요한 장비를 썼고, 원하는 장비가 없으면 손에 있는 장비로 방법을 찾았습니다.
Q. 1970년대 서울의 마샬은 어떤 앰프가 되었을까요?
신중현에게는 늘 어떤 소리가 필요한가와 지금 무엇을 구할 수 있는가라는 두 질문이 따라붙었을 것입니다. 장비는 완성품으로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 고장 나면 고치고, 부품이 없으면 다른 것을 찾고, 진공관이 나가면 구할 수 있는 관을 꽂아 다시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온 마샬 슈퍼 리드에 시간이 지나 국내에서 구한 GE 빅보틀 6CA7이 들어가고 프리앰프에 GE나 RCA 같은 미국산 12AX7이 섞였다면, 그 앰프는 영국 공장에서 출고된 마샬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아남은 신중현의 마샬이 됩니다. 실제로 그랬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가 음악을 만든 시대를 잘 보여주는 상상입니다. 그리고 그 장비로 나온 것은 미국 록의 복사본이 아니라 미인이었습니다.
Q. 신중현의 음악은 왜 모방에서 끝나지 않았나요?
출발점에는 미국 음악이 있었습니다. 직접 만든 라디오로 AFKN을 듣고, 미8군에서 미국인이 원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블루스와 록, 소울과 사이키델릭의 어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결과는 미국 음악에서 멀어졌습니다. 버린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한 것입니다. 미인은 전기기타와 베이스, 드럼, 영국제 록 앰프로 된 서양식 록 밴드 형식이지만, 리프와 노래가 주고받기 시작하면 묘하게 한국말의 리듬과 잘 붙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외국 음악을 듣고 오래 연주해 몸 안에 넣은 뒤 자기 음악으로 꺼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Q. 열악한 환경 덕분에 신중현의 음악이 만들어진 것인가요?
그렇게 낭만적으로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기타와 앰프, 부품이 부족했던 것도, 녹음 환경이 열악했던 것도 약점이었습니다. 제약이 신중현의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신중현이 제약을 안고도 음악을 만든 것입니다. 장비와 녹음실이 더 좋았다면 또 다른 음악과 다른 소리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 귀의 기준까지 낮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손에 들어온 장비에서 시작해 필요하면 바꾸고 고치며 자기 귀가 원하는 곳까지 갔습니다.
Q. 신중현에게 좋은 장비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은 기타와 픽업, 퍼즈와 앰프, 진공관의 제조사와 생산 시기까지 고를 수 있어 오히려 장비 고르기가 음악보다 앞서기 쉽습니다. 신중현의 시대에는 이미 귀에 원하는 음악이 있었고 선택할 장비가 많지 않았으니, 질문은 이 장비가 얼마나 유명한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음악을 여기서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는가였을 것입니다. 장비는 분명 중요하고 진공관이 달라지면 앰프가 연주를 받아내는 출발점도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장비도 연주자 대신 방향을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장비는 소리의 출발점을 바꾸고, 어디까지 갈지는 연주자가 결정합니다. 기타 모델도, 퍼즈도, 당시의 진공관도 끝내 찾지 못했지만 미인의 첫 리프 몇 음에는 분명 신중현의 소리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