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펜더는 어떻게 기타 앰프의 기준이 되었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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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는 어떻게 기타 앰프의 기준이 되었나요?

Q. 펜더 앰프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1940년대 밥 윌스의 텍사스 플레이보이스 같은 웨스턴 스윙 밴드에서 기타는 다른 악기에 묻혔고, 앰프 볼륨을 올리면 소리가 찌그러지거나 고장 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기타를 제대로 치지도 못하던 라디오 수리공 레오 펜더(Leo Fender)였습니다. 1938년 캘리포니아 풀러턴에 라디오 수리점을 연 그는 고장 난 부품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왜 고장 났는지, 구조를 바꾸면 어떨지까지 생각했고, 음악가들의 불평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기타리스트처럼 생각한 것이 아니라 기타리스트가 원하는 소리를 기계로 어떻게 만들지를 생각했습니다. 진열창에 텔레비전을 설치해 밤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레슬링을 구경했을 만큼 새로운 전기제품을 좋아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Q. 초기 펜더는 어떤 회사였나요?

1940년대 중반 레오는 전기악기 기술자 닥 카우프먼(Doc Kauffman)과 K&F를 세우고 전기 스틸 기타와 앰프를 만들었지만, 한번 작업에 몰두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뜯어고치는 레오의 방식과 사업의 불확실성에 카우프먼이 부담을 느꼈다는 설명이 전해지며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1946년 무렵의 초기 앰프는 나뭇결이 드러나는 캐비닛이라 지금 수집가들이 Woodie라고 부르는데, 스틸 기타용으로 받은 목재가 너무 얇아 버리기 아까워 캐비닛에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 초기 펜더는 지금의 맑은 클린 이미지와 달리 출력이 크지 않고 볼륨을 올리면 거칠게 찌그러졌습니다. 깨끗한 소리만 만들던 회사가 아니라 음악가가 원하는 소리를 어떻게든 만들어주려던 작은 회사였습니다.

Q. 펜더의 성공은 레오 펜더 혼자 만든 것인가요?

아닙니다. 판매를 맡은 돈 랜들(Don Randall)의 회고에 따르면 레오와 유통업자 프랜시스 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자신이 심판 같은 역할을 해야 했고, 1955년에는 판매 책임자 찰리 헤이스가 업무 통화를 마치고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습니다. 더 좋은 앰프를 원하는 개발자와 제때 완성된 앰프를 원하는 판매자가 부딪히며 성장한 회사였습니다. 레오는 음악가들의 마음에 무조건 공감하기보다 그들이 가져오는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는 기술자에 가까웠고, 그가 문제를 해결하면 음악가들은 그 앰프를 새로운 방식으로 써서 또 다른 요구를 만들어냈습니다. 펜더의 발전은 처음부터 이런 식이었습니다.

Q. 딕 데일은 펜더 앰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1960년대 초 서프 기타의 전설 딕 데일(Dick Dale)은 레오에게 더 큰 앰프를 요구하고, 만들어주면 고장 내고, 더 강력하게 만들어주면 또 고장 냈습니다. 무려 50대에 가까운 앰프를 망가뜨렸다는 회고도 있습니다(정확한 수리 기록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대형 PA가 없던 시절 앰프 자체가 공연장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레오에게 그는 가장 성가신 고객이자 가장 혹독한 시험 연주자였고, 레오와 하와이안 스틸 기타 연주자이기도 한 개발자 프레디 타바레스, JBL이 함께 고출력 앰프와 스피커를 발전시킨 결과가 Showman입니다. 딕 데일이 원한 것은 힘없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아니라 빠르고 강한 피킹에도 음 하나하나가 힘 있게 튀어나오는 소리였고, 이 시기 펜더의 클린은 엄청난 음량에서도 공격적인 피킹을 버텨주는 소리를 뜻했습니다.

Q. 베이스맨은 어떻게 기타 앰프의 역사를 바꿨나요?

1950년대 초 Precision Bass가 나오자 펜더는 낮은 음역을 재생할 베이스 앰프 Bassman을 만들었는데, 특히 1950년대 후반 4×10 Bassman의 풍부한 저음과 힘 있는 중역, 볼륨을 올렸을 때의 거친 드라이브를 기타리스트들이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1957년 무렵 5F6에는 수은증기로 정류하는 83 정류관이 쓰였다가 5F6-A에서는 GZ34/5AR4로 바뀌었는데, 전원부까지 적극적으로 실험했다는 흔적입니다. 그리고 1960년대 초 영국의 짐 마샬과 켄 브랜, 더들리 크레이븐이 5F6-A를 참고해 앰프를 만들었습니다. 다만 영국 부품, 5881에서 KT66으로 바뀐 출력관, 오픈백 4×10 대신 셀레스천 스피커의 밀폐형 캐비닛이 더해지며 펜더는 넓고 시원한 소리, 마샬은 두껍고 공격적인 록 사운드의 상징으로 갈라졌습니다.

Q. 펜더는 왜 점점 더 깨끗한 소리를 만들었나요?

Tweed 시대를 지나 Brownface, Blackface로 가면서 더 큰 무대와 다양한 음악가의 요구에 맞춰 출력과 클린 헤드룸을 키우고 리버브와 트레몰로를 도입했습니다. 1960년대 6L6GC를 쓰는 Twin Reverb가 그 강력한 클린의 대표입니다. 그런데 펜더가 더 강력하고 깨끗한 앰프를 만드는 동안 일부 기타리스트는 오히려 볼륨을 조금만 올려도 찌그러지는 예전 Tweed 소리를 좋아했고, 이것이 훗날 펜더가 오래된 앰프를 복각하는 배경이 됩니다. 개발자가 없애려 한 특성을 기타리스트는 사랑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Q. CBS가 펜더의 소리를 망쳤나요?

1965년 레오는 오랜 부비동 질환 등 건강 문제로 회사를 약 1,300만 달러에 CBS에 팔았는데, 정작 매각 뒤 치료로 건강이 좋아져 Music Man과 G&L 개발에 관여하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CBS 시대 Silverface는 무조건 나빠졌다는 평가를 받곤 하지만, 초기 Silverface 중에는 Blackface와 회로가 크게 다르지 않은 제품도 있었습니다. 반면 1970년대 Twin Reverb는 마스터 볼륨이 추가되고 후반에는 울트라리니어 출력 트랜스로 135W에 이르는 모델까지 나왔습니다. 큰 공연장이나 페달 스틸처럼 강력한 클린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이었지만, 자연스럽게 거칠어지는 옛 펜더를 좋아한 사람에게는 너무 깨끗하고 단단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소리가 무조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좋은 소리의 기준이 서로 달랐다는 점일 수 있습니다.

Q. 1980년대 펜더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마샬과 메사/부기의 강한 드라이브가 인기를 얻자, 펜더 트윈으로 에릭 클랩튼이나 레슬리 웨스트 소리를 내달라는 고객의 앰프를 개조해주던 기술자 폴 리베라(Paul Rivera)가 1980년 펜더 개발자로 영입됐고, 6V6 두 개에 다양한 게인과 리버브를 담은 Super Champ 같은 제품이 나왔습니다. 1985년에는 빌 슐츠(Bill Schultz)를 중심으로 한 경영진이 CBS로부터 펜더를 되찾았지만 기존 풀러턴 공장은 거래에 포함되지 않아, 남은 부품과 섀시로 일부 앰프를 조립하고 같은 해 12월 앰프 제조사 Sunn 인수를 결정하며 생산 기반부터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Q. 펜더는 왜 옛날 앰프를 다시 만들었나요?

1990년 펜더는 59 Bassman 리이슈를, 이듬해 65 Twin Reverb 리이슈를 내놓았습니다. 앰프 기술은 수십 년간 발전했지만 기타리스트들이 Tweed의 자연스러운 브레이크업, Blackface의 맑은 클린, 스프링 리버브를 다시 찾았기 때문입니다. 한때 출력이 부족하고 쉽게 찌그러진다고 여긴 앰프가 빈티지 사운드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이후 펜더는 방향을 여럿으로 나눕니다. 1996년 Hot Rod Deluxe와 DeVille은 펜더다운 클린에 Drive를 갖춰 공연장 백라인에서 자주 보는 실용적인 일꾼이 됐고, 같은 Hot Rod 계열의 Blues Junior(15W, EL84)와 Pro Junior는 작은 몸체에서 진공관 반응과 자연스러운 드라이브를 즐기는 앰프입니다. 2016년 Bassbreaker는 EL84나 EL34로 영국식 록 사운드를 탐색해, 펜더에서 출발한 소리가 영국을 거쳐 다시 펜더로 돌아온 셈이 됐습니다.

Q. 65 리이슈와 68 Custom은 무엇이 다르고, Tone Master는 무엇인가요?

65 리이슈는 1960년대 중반 펜더의 소리와 반응을 되살리는 데 무게를 두고, 68 Custom은 그 성격을 바탕으로 현대 기타리스트의 사용 방식까지 고려합니다. 개발자 릭 하인스(Rick Heins)에 따르면 68 Custom Deluxe Reverb에서는 낮은 볼륨에서 고음을 선명하게 해주던 브라이트 콘덴서를 제거했습니다. 앰프 볼륨보다 오버드라이브 페달을 많이 쓰는 지금은 그 회로가 페달 소리를 지나치게 날카롭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보존할지, 오늘의 연주자에 맞게 다시 해석할지의 차이입니다. 2019년의 Tone Master Deluxe Reverb와 Twin Reverb는 진공관 없이 디지털로 펜더 진공관 앰프의 소리와 반응을 재현하며 무게를 줄이고 출력 감쇄 기능을 넣었고, 빈티지 펜더를 오래 써온 조 보나마사도 개발에 협력했습니다. 진공관 앰프와 같다는 뜻은 아니지만, 펜더는 진공관 앰프를 계속 만들면서 그 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쓰게 하려는 것입니다.

Q. 결국 펜더는 어떤 회사인가요?

한 가지 소리만 고집한 회사가 아닙니다. 1950년대에는 더 큰 소리를, 1960년대에는 강력한 클린을, 1980년대에는 강한 드라이브에 대한 대응을, 1990년대에는 옛 소리의 복각과 실용적인 Hot Rod를, 지금은 진공관과 디지털 앰프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소리를 그대로 원하면 Vintage Reissue, 빈티지 성격을 페달 환경에서 원하면 68 Custom, 무대에서 클린과 드라이브를 원하면 Hot Rod, 작은 앰프의 진공관 반응을 원하면 Blues Junior와 Pro Junior, 더 공격적인 록이라면 Bassbreaker, 가볍고 편리한 펜더 사운드라면 Tone Master가 있습니다. 어느 모델이 가장 유명한가보다 원하는 소리를 펜더가 어떤 생각으로 만든 앰프에서 찾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펜더의 역사는 레오 혼자가 아니라 앰프를 쓰고 불평하고 고장 내고 뜯어고친 기타리스트들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