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기타 앰프는 어떻게 하이파이를 버리고 악기가 되었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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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앰프는 어떻게 하이파이를 버리고 악기가 되었나요?

Q. 기타 앰프는 처음에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나요?

기타 소리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크게 들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밴드에 드럼과 관악기가 들어오고 연주 규모가 커지자 어쿠스틱 기타는 쉽게 묻혔고, 해결 방법은 기타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 증폭한 뒤 스피커로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기타 앰프만을 위한 새로운 증폭 기술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이파이와 공유하는 진공관 증폭 기술을 가져와 사용했습니다. 1930년대 Gibson EH-150 같은 초기 시스템을 보면 무엇을 원했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이 변화로 기타는 리듬을 받쳐주는 데 머물지 않고 솔로 악기로 움직일 공간을 얻었습니다.

Q. 언제부터 하이파이와 다른 길로 갈라졌나요?

기타리스트들이 더 큰 음량을 원하면서 볼륨을 계속 올린 시점부터입니다. 신호가 충분히 커지면 회로가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증폭하지 못하고 파형이 변하며 배음이 붙습니다. 출력단을 강하게 밀면 음이 눌리면서 피킹에 따른 반응도 달라지고 스피커도 한계에 가까워지며 자기 색을 더합니다. 하이파이라면 이런 변화는 가능한 한 줄여야 할 대상이지만 기타리스트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Q. 기타리스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디스토션이라는 새로운 음색만이 아니라 반응이었습니다. 기타 볼륨을 내리면 소리가 풀리고, 세게 치면 더 깨지고, 약하게 치면 다시 깨끗해지는 변화까지 연주의 일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1950년대 Fender Tweed 앰프들이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도 당시 기준으로 가장 정확한 증폭기였기 때문이 아니라 볼륨을 올렸을 때 나타나는 브레이크업과 컴프레션, 피킹에 따라 달라지는 반응 때문입니다. 제작자는 더 좋은 성능을 향해 가는데 기타리스트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완전한 소리에 매력을 느꼈고, 여기에서 좋은 증폭기의 기준과 좋은 기타 앰프의 기준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Q. 무대가 커지면서 무엇이 달라졌나요?

록 음악과 공연장이 커지면서 더 큰 출력이 필요해졌습니다. 영국에서 짐 마샬과 동료들이 만든 초기 Marshall 앰프는 Fender Bassman 회로에서 중요한 영향을 받았지만 구할 수 있는 부품과 스피커, 출력관이 달랐고 기타리스트들이 원하는 것도 달라 점차 자기만의 소리를 갖게 됩니다. 1960년대 후반 Marshall Plexi, 특히 Super Lead 계열을 강하게 밀었을 때 나오는 단단한 어택과 거친 브레이크업, 출력단이 밀리며 나타나는 압축감은 록 기타의 중요한 소리가 됐습니다. 이제 기타리스트들은 증폭기의 한계를 피하는 대신 깨지는 지점까지 앰프를 일부러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Q. 우연히 깨지던 시대는 어떻게 끝났나요?

좋은 브레이크업을 얻으려면 소리가 너무 커져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력단을 한계까지 미는 것만이 아니라 프리앰프에서 신호를 더 적극적으로 키우고 여러 증폭단을 거치며 원하는 만큼 게인을 만드는 방법이 중요해졌고, 마스터 볼륨 덕분에 게인과 최종 음량을 따로 다룰 수 있게 됐습니다. 1970년대 Mesa/Boogie Mark I 계열은 여러 프리앰프 증폭단으로 높은 게인과 긴 서스테인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예입니다. 디스토션은 앰프가 견디지 못해 생기는 부산물이 아니라 어디에서 깨질 것인지까지 설계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Q. 모든 기타리스트가 더 많은 게인을 원했나요?

아닙니다. 기타 앰프의 역사를 게인의 증가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같은 시대에도 볼륨을 높여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클린, 코드를 쳤을 때 음이 또렷하게 남는 소리, 이펙트를 걸어도 바탕이 흐려지지 않는 앰프를 원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1975년 등장한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 Roland JC-120은 진공관의 브레이크업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흉내 내느냐로 자기 자리를 만든 앰프가 아니라 높은 클린 헤드룸과 또렷한 소리, 넓게 펼쳐지는 코러스로 자기 영역을 만들었습니다. Plexi도 Boogie도 JC-120도 남은 것은 서로 다른 것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Q. 기타리스트가 앰프 개발에 직접 들어온 사례도 있나요?

1980년대에는 마음에 드는 앰프를 버리고 새 제품을 기다리는 대신 기존 앰프를 고쳐 쓰는 문화가 커졌습니다. Jose Arredondo 같은 기술자가 Marshall을 개조했고 Paul Rivera, Mike Soldano, Reinhold Bogner 같은 제작자들도 현장의 요구를 가까이에서 받아들였습니다. 1990년대의 Peavey 5150은 에디 반 헤일런과 Peavey가 함께 개발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앰프를 유명 기타리스트가 사용하는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소리와 무대에서 필요한 조건이 앰프를 만드는 과정에 직접 들어간 것입니다.

Q. 모델러 시대에는 무엇이 문제가 되었나요?

1990년대 후반 Line 6 POD는 기타 앰프가 반드시 특정한 진공관과 출력 트랜스, 스피커 캐비닛으로만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모델링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실제 앰프와의 차이가 줄어들자 기타리스트들은 소리는 비슷한데 칠 때 느낌이 다르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대의 Kemper Profiler는 유명한 앰프 모델을 고르는 것에서 실제 사용하는 특정 앰프와 세팅의 소리를 담아 다시 불러오는 방향으로, Fractal 같은 모델러는 진공관 회로의 비선형 동작과 파워앰프, 스피커 부하의 상호작용을 더 세밀하게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Q. 앞으로 진공관의 자리는 어떻게 될까요?

진공관이 다시 기타 앰프 시장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디지털과 솔리드 스테이트는 가볍고 편리하며 여러 소리를 저장할 수 있고 녹음과 PA 연결도 쉽습니다. 다만 진공관의 자리는 오히려 더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진공관밖에 없어서 사용했지만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충분한데도 그 소리와 반응을 원해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공관 역시 모든 앰프에 들어가는 범용 부품이라기보다 그 반응을 원하는 기타리스트가 일부러 선택하는 부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얼마나 많이 쓰이느냐보다 왜 쓰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