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하이와트, 암페그, 오렌지, 레이니는 록 음악을 어떻게 바꿨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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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와트, 암페그, 오렌지, 레이니는 록 음악을 어떻게 바꿨나요?

Q. 펜더, 복스, 마샬이 있는데 왜 다른 앰프 회사들이 필요했나요?

1960년대 록 공연이 커지면서 음악가들이 원하는 소리가 모두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타리스트는 큰 음량에서도 선명한 소리를, 어떤 베이시스트는 드럼과 기타가 몰아치는 무대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저음을 원했고, 또 어떤 기타리스트는 앰프가 거칠게 일그러지는 순간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영국의 하이와트, 미국의 암페그, 런던의 오렌지, 버밍엄의 레이니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그 요구에 답했습니다.

Q. 하이와트(Hiwatt)는 어떤 회사인가요?

전자기술자 데이브 리브스(Dave Reeves)가 집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로, 소음 때문에 이웃이 민원을 넣어 점검을 앞두고 장비를 옮겼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유명 앰프를 따라 하기보다 강력한 출력과 선명한 소리, 높은 신뢰성을 추구했고, 피터 웨버(Peter Webber)가 앰프를 싣고 공연장을 다니며 음악가들에게 직접 들려주었습니다. 1971년에는 영국 해군 관련 계측 장비 배선을 하던 해리 조이스(Harry Joyce)의 작업장에 배선을 맡겼고, 초기 하이와트의 정돈된 내부 배선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1981년 리브스가 세상을 떠난 뒤 소유권과 생산 체계가 바뀌었지만 1970년대 앰프의 명성은 남았습니다.

Q. 하이와트 DR103은 같은 EL34 100W인 마샬과 무엇이 달랐나요?

DR103은 EL34 네 개의 100W급 앰프로, 음량을 올리면 드라이브가 나지만 비교적 높은 클린 헤드룸과 명료한 반응으로 큰 음량에서도 선명함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형 공연장에서 강하게 쳐도 윤곽이 유지되고 이펙터의 의도도 분명하게 전달됐습니다. 피트 타운젠드는 강렬한 스트로크로 무대를 장악했고(일반 DR103과 다른 맞춤형 CP103 계열도 썼습니다), 데이비드 길모어는 이펙터로 섬세하고 거대한 공간감을 만들었습니다. 음악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모두 고른 것은, 하이와트가 특정 왜곡음을 내세우기보다 소리를 만들어갈 강력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Q. 암페그(Ampeg)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나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에버렛 헐(Everett Hull)이 다른 악기들 사이에서 소리를 전달하기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개발한 Amplified Peg에서 왔습니다. 콘트라베이스의 엔드핀과 관련된 구조로 소리를 증폭하는 장치였습니다. 처음부터 기타 앰프 회사가 아니라 베이스 연주자의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려고 시작된 회사라는 점이 암페그의 정체성입니다.

Q. 암페그 B-15와 SVT는 무엇이 다른가요?

1960년에 나온 B-15 Portaflex는 앰프 헤드를 캐비닛 안으로 뒤집어 넣는 플립톱 구조로도 유명하지만, 따뜻하고 풍부한 저음으로 스튜디오 녹음에서 널리 쓰였고 모타운 계열 녹음과도 연결됩니다. 1969년의 SVT(Super Vacuum Tube)는 약 300W 진공관 앰프로, 초기에는 6146 여섯 개를 쓰다 이후 6550 설계로 발전했으며 대형 캐비닛과 함께 거대한 공연장에서 강력하고 분명한 베이스를 전달했습니다. B-15가 녹음실에서, SVT가 공연장에서 베이스 사운드의 기준이 됐습니다.

Q. SVT와 롤링 스톤스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암페그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1969년 미국 투어를 준비하던 롤링 스톤스가 영국에서 가져온 앰프를 미국 전원에 연결하다 문제가 생겨 새 앰프가 필요해졌습니다. 암페그의 리치 만델라(Rich Mandella)는 개발 중이던 SVT 시제품을 픽업트럭에 싣고 리허설 현장으로 갔고, 키스 리처드, 믹 테일러, 빌 와이먼은 이를 베이스뿐 아니라 기타에도 연결했습니다. 시제품이 높은 출력에서 과열되자 만델라는 다른 시제품으로 교체하며 지원하다 결국 투어에 동행했습니다. SVT가 실제 대형 록 공연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였습니다.

Q. 오렌지(Orange)는 처음부터 두꺼운 소리를 냈나요?

아닙니다. 1968년 런던에 Orange Shop을 연 클리프 쿠퍼(Cliff Cooper)는 주요 제조사들이 신생 가게에 신제품을 공급하지 않자 직접 앰프를 만들기로 하고, Radio Craft를 운영하던 맷 매사이어스(Mat Mathias)와 초기 Orange Matamp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이파이에 가까운 설계 철학을 가진 매사이어스의 앰프는 너무 깨끗해서 거친 드라이브와 긴 서스테인이 부족했습니다. 쿠퍼는 피터 그린, 폴 코소프, 마크 볼란 같은 음악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프리앰프 설계를 발전시켰고, 그림 기호 패널의 Pics-Only와 EL34를 쓰는 OR120으로 오렌지 특유의 두껍고 거친 소리를 확립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활동이 위축됐다가 1990년대에 재건됐습니다. OR120은 FAQ의 Orange OR120은 같은 EL34 네 알인데 왜 마샬과 소리가 다른가요? 편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Q. 레이니(Laney)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버밍엄의 젊은 음악가 린든 레이니(Lyndon Laney)는 훗날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와 존 본햄도 몸담았던 밴드 오브 조이(Band of Joy) 시절을 거쳐, 1967년 아버지의 차고에서 앰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밴드를 해봐서 주변 음악가들의 요구를 이해했고, 지역 음악가들과 가까운 관계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 버밍엄 음악계에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가 있었습니다.

Q. 토니 아이오미와 레이니는 헤비메탈 소리를 어떻게 만들었나요?

블랙 사바스의 음악은 무겁고 어두운 리프 자체가 곡의 중심이었고, 아이오미가 쓴 중요한 앰프가 EL34 100W급 Laney Supergroup 100(초기 대표 모델 LA100BL)이었습니다. 원래 오늘날 하이게인처럼 프리앰프 게인이 많은 앰프가 아니어서, 그는 부스터로 앰프를 강하게 밀어 드라이브를 만들었습니다. 왼손잡이인 그는 공장 사고로 줄을 누르는 오른손 손가락 끝을 다친 뒤 보조 장치를 만들고 줄과 튜닝을 조정하며 연주를 이어갔고, 이것도 연주감과 소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만 첫 앨범부터 모든 곡이 낮은 튜닝은 아니었습니다. 레이니가 헤비메탈을 발명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1970년 첫 앨범의 초기 사운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레이니는 이후 아이오미 시그니처 앰프도 내놓았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앰프를 만듭니다.

Q. 같은 EL34인데 세 회사의 소리는 왜 달랐나요?

하이와트 DR103, 오렌지 OR120, 레이니 Supergroup 100은 모두 EL34를 씁니다. 그런데 하이와트는 큰 음량에서도 선명함과 반응을 유지했고, 오렌지는 두툼하고 거친 드라이브를 발전시켰으며, 레이니는 아이오미의 부스터와 연주 방식이 더해져 무거운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제작자가 추구한 방향과 음악가가 쓰는 방식이 달랐던 것입니다. 진공관 교체만으로 하이와트를 오렌지로, 오렌지를 레이니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앰프의 기본 성격은 회로와 전체 설계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로를 바꾸지 않아도 진공관의 선택과 조합으로 자기 앰프 안에서 소리의 출발점을 조절할 여지는 있고, 기타리스트가 자기 소리를 찾아가는 일은 앰프가 만들어진 뒤에도 끝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