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마샬은 세계적인 명기를 만들었는데 왜 기타리스트들은 계속 불평했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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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은 세계적인 명기를 만들었는데 왜 기타리스트들은 계속 불평했나요?

Q. 마샬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1960년 런던 핸웰에 작은 악기점을 연 짐 마샬(Jim Marshall)은 드러머이자 드럼 선생님이었고, 앰프를 설계해본 적도 전자공학을 공부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게에 훗날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 딥퍼플의 리치 블랙모어 같은 젊은 기타리스트들이 몰려와 마음에 드는 앰프가 없다, 소리가 약하다, 볼륨을 올리면 음색이 별로라고 불평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펜더 베이스맨 같은 미국 앰프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고, 짐 마샬은 그렇다면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Q. 펜더 베이스맨을 참고했는데 왜 다른 소리가 나왔나요?

짐 마샬은 켄 브랜(Ken Bran), 더들리 크레이븐(Dudley Craven), 켄 언더우드(Ken Underwood) 등 기술자들을 모았고(최초 시제품을 누가 주도했는지에는 서로 다른 회고가 있지만 짐 마샬 혼자 설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펜더 베이스맨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 구할 수 있는 부품과 출력 트랜스가 달랐고 초기 JTM45에는 KT66이 쓰이는 등 차이가 쌓이면서 다른 소리가 됐습니다. 처음부터 펜더와 정반대의 소리를 노린 것이 아니라, 좋은 앰프를 자기 방식으로 만들었더니 다른 매력이 나온 것입니다. 볼륨을 올리면 거칠어지고 강하게 치면 음이 앞으로 튀어나와, 앰프가 소리를 키우는 장비에서 소리 자체를 만드는 도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Q. 마샬 스택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기타를 휘두르고 피드백을 만들고 공연 절정에 기타를 부수던 피트 타운젠드에게 앰프는 공연 자체를 만드는 도구였고, 그는 더 큰 소리를 원했습니다. 마샬은 출력을 키웠고 그 요구는 12인치 스피커 여덟 개를 넣은 거대한 8×12 캐비닛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크고 무거워 트럭에 싣고 공연장에 들이는 일이 만만치 않자, 여덟 개를 4×12 캐비닛 두 개로 나눠 위아래로 쌓는 방식이 발전했습니다. 록 음악의 상징이 된 마샬 스택에는 장비를 옮기기 어렵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와 그것을 운반하던 사람들의 몫도 들어 있습니다.

Q. 마샬의 소리는 JTM45 이후 어떻게 변했나요?

JTM45에서 출발해 100와트급 앰프가 나오고, 초기의 KT66 외에 EL34를 쓰는 제품들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진공관만이 아니라 회로와 트랜스, 스피커 구성도 함께 발전해, 초기 JTM45의 두툼하고 비교적 둥근 성격과 이후 여러 마샬의 공격적인 중음은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매력이 다릅니다. 당시 기타리스트들이 관심을 둔 것은 진공관 형식이나 회로가 아니라 볼륨을 올렸을 때 나오는 소리였고, 앰프를 강하게 밀면 거칠어지고 음이 길게 이어지며 피킹에 따라 왜곡이 달라지는 그 소리가 록 음악과 맞아떨어졌습니다. 펜더를 참고해 시작한 앰프가 펜더와 다른 록 사운드의 상징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Q. 기타리스트들은 왜 마샬을 사서 뜯어고쳤나요?

회사가 커지면서 일정한 사양으로 많이 만들어야 했지만 기타리스트들의 요구는 더 다양해졌고, 그들은 마샬을 산 뒤 다른 기술자에게 고쳐달라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치 블랙모어는 복스 계열 소리를 더 좋아해 일부 마샬 내부에 복스 계열 회로를 쓰는 시도도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겉은 마샬인데 속에서는 복스의 소리를 찾은 셈입니다. 1970~80년대 하드록과 헤비메탈이 성장하며 강하게 왜곡되면서도 연주가 분명하게 들리는 소리가 필요해지자 호세 아레돈도(José Arredondo) 같은 개조 기술자들이 주목받았습니다. 프리앰프 게인단을 추가하거나 연결을 바꾸면 왜곡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달라져, 진공관 교체나 EQ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변화였습니다. 마샬이라는 출발점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자체가 완성된 정답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Q. 랜디 로즈의 흰색 마샬에는 어떤 비밀이 있었나요?

1980년대 초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클래식의 영향을 받은 정교한 연주로 주목받은 랜디 로즈(Randy Rhoads)의 흰색 마샬은 색깔만이 아니라 내부 회로도 개조되어 기존 게인 구조를 바꿔 더 강한 왜곡을 얻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많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아니라 빠른 연주에서도 음 하나하나가 분명하고 강한 왜곡 속에서도 피킹의 윤곽이 살아 있는 소리였고, 진공관 교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마샬은 그 개조 앰프를 조사해 1959RR 시그니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마샬이 만든 앰프를 기타리스트가 개조하고, 그 개조 앰프를 다시 마샬이 만들어 판 것입니다.

Q. 마스터 볼륨과 JCM800은 마샬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전 마샬에서 강한 오버드라이브를 얻으려면 메인 볼륨을 크게 울려야 해 작은 공연장이나 연습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1970년대 중반 마샬은 프리앰프의 왜곡과 최종 음량을 어느 정도 나눠 조절할 수 있는 마스터 볼륨 앰프를 내놓았고, 출력단을 크게 울린 소리와 같지는 않지만 낮은 음량에서도 강한 왜곡을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1981년 등장한 JCM800 시리즈, 특히 2203과 2204는 강한 중음과 거친 오버드라이브로 하드록과 헤비메탈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앰프가 됐는데, 완전히 새로운 회로가 아니라 1970년대 마스터 볼륨 설계를 이어받은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 스티브 그라인드로드(Steve Grindrod)는 텔레캐스터의 컨트리 쪽을 좋아해 JCM800의 거친 소리가 자기 취향과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좋아하는 소리와 쓰는 사람이 열광하는 소리가 달랐던 것입니다.

Q. 슬래시는 마샬에 어떤 부탁을 했나요?

1990년대 건즈 앤 로지스의 슬래시(Slash)는 1987년 마샬 창립 25주년 기념으로 나왔다가 단종된 실버 주빌리(Silver Jubilee)의 두툼한 중음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리드 톤을 좋아해, 짐 마샬에게 같은 앰프를 열 대만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짐 마샬이 직접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열 대를 위해 부품 확보와 생산 준비를 다시 하기는 부담스러워, 아예 정식 제품으로 만들자고 해서 1996년 2555SL Slash Signature가 3,000대 생산됐습니다. 새 기능이나 더 강한 게인이 아니라 이미 찾은 소리를 계속 쓰고 싶었던 것이고, 오래된 플렉시나 JCM800을 찾는 사람들처럼 새 앰프가 반드시 더 좋은 앰프는 아니었습니다.

Q. 조 새트리아니는 왜 컴프레션을 줄여달라고 했나요?

2000년대에는 한 앰프로 클린부터 하이게인까지 얻고 싶어 하는 요구에 맞춰 2007년 JVM410H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를 쓰던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는 소리가 너무 쉽게 압축된다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강한 왜곡은 음을 길게 잇고 연주를 부드럽게 하지만, 압축감이 지나치면 강하게 쳐도 소리가 충분히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당시 그는 채드 스미스(Chad Smith)가 드럼을 맡은 Chickenfoot에서도 활동했는데, 강하게 밀어붙이는 드러머와 연주할 때 기타가 일정한 수준에 머무르면 답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게인이 아니라 손끝이 더 잘 드러나도록 컴프레션을 줄여달라고 요구했고, 마샬은 JVM410HJS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오버드라이브를 리듬에서는 그대로, 솔로에서는 음량과 음색만 조금 바꿔 쓰고 싶어 비슷한 성격의 오버드라이브 채널 두 개를 원했습니다. 많은 소리보다 좋아하는 소리를 자유롭게 쓰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Q. 마샬은 결국 어디로 가고 있나요?

2025년 마샬은 1959 Modified와 JCM800 Modified를 발표했습니다. 이름의 Modified는 개조했다는 뜻으로, 한때 기타리스트들이 외부 기술자에게 부탁하던 일을 이제 마샬이 직접 제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기존 앰프의 매력은 유지하면서 더 다양한 연주에 대응하도록 기능을 더했으니,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오래된 마샬에서 좋아했던 부분을 오늘의 환경에 맞게 다시 쓰는 것입니다. 더 큰 소리, 회로 개조, 단종 모델의 재생산, 더 많은 게인과 오히려 줄어든 컴프레션까지, 1960년대 런던의 작은 악기점에서 시작된 기타리스트들의 불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불평이 마샬의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