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톤 스튜디오VOX는 회사가 흔들렸는데 어떻게 AC30의 소리가 살아남았나요? | 튜브톤 스튜디오 | 서울 원효전자상가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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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는 회사가 흔들렸는데 어떻게 AC30의 소리가 살아남았나요?

Q. VOX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1950년대 영국에서 로큰롤과 스키플의 인기로 전기기타가 대중음악의 중심이 됐지만, 미국산 펜더 앰프는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시장에 뛰어든 사람은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1940년대부터 아코디언과 전자오르간을 팔고 고치던 사업가 톰 제닝스(Tom Jennings)였습니다. 그는 전자기술에 밝고 직접 기타를 치며 앰프를 만들어본 딕 데니(Dick Denney)와 손잡았고, 제닝스가 시장을 읽고 사업을 이끄는 동안 데니는 기타리스트가 원하는 소리를 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1958년 두 사람의 협력으로 15W 진공관 앰프 VOX AC15가 나왔고, 미국산에 의존하지 않고도 선명하고 힘 있는 소리를 낼 수 있어 빠르게 이름을 알렸습니다.

Q. AC30은 왜 만들어졌나요?

섀도우스(The Shadows)의 행크 마빈(Hank Marvin)은 기타를 거칠게 몰기보다 부드러운 비브라토와 에코로 멜로디를 또렷하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였습니다. 클리프 리처드와의 공연에서 관객 함성이 커지자 AC15로는 출력이 부족했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디스토션이 아니라 큰 공연장에서도 멜로디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959년 무렵 AC30이 나왔고, 12인치 스피커 두 개의 AC30 Twin과 이후의 Top Boost 모델은 영국 기타 사운드의 기준이 됐습니다. 흥미롭게도 처음에는 큰 음량에서 선명한 소리를 위한 앰프였지만, 기타리스트들은 볼륨을 높였을 때의 자연스러운 컴프레션과 풍부한 배음까지 좋아하게 됐습니다. 개발자가 해결하려던 문제와 기타리스트들이 나중에 발견한 매력이 같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Q. 비틀스는 VOX에 어떤 의미였나요?

1960년대 초 리버풀에서 인기를 얻은 비틀스의 무대에는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VOX 앰프가 놓였고, 다이아몬드 무늬 그릴과 VOX 로고는 비틀스 무대의 익숙한 모습이 됐습니다. 인터넷으로 장비를 비교할 수 없던 시절, 좋아하는 음악가의 장비는 중요한 정보였고 1964년 비틀스의 미국 진출과 함께 VOX도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이 커지고 함성이 거세지자 비틀스는 자기 연주조차 잘 들리지 않았고, 대형 PA가 없던 시절이라 VOX는 AC50과 100W급 AC80/100, AC100 같은 고출력 앰프를 개발했습니다. VOX는 고출력 앰프에서 결코 뒤처진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Q. 같은 영국 앰프인데 왜 대형 록 앰프 하면 마샬이 먼저 떠오르나요?

마샬은 펜더 베이스맨을 참고해 출발한 뒤 자신만의 회로와 캐비닛을 발전시켰고,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처럼 엄청난 음량과 강한 반응을 원하는 기타리스트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비틀스와 더 후 모두 큰 소리가 필요했지만, 비틀스에게는 함성을 뚫고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타운젠드에게는 앰프에서 쏟아지는 소리 자체가 공연의 요소였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VOX는 비틀스와 섀도우스를 통해 선명하고 생생한 영국식 사운드의 상징이, 마샬은 두껍고 공격적인 록 사운드의 상징이 됐습니다. AC30도 강하게 울리면 거친 드라이브가 나고 마샬도 깨끗한 소리를 낼 수 있으니, 두 회사의 차이는 회로보다 어떤 음악가가 쓰고 어떤 소리로 알려졌느냐에 있었습니다.

Q. 성공한 VOX의 창업자는 왜 회사를 떠났나요?

비틀스 덕분에 해외 주문이 늘어 생산시설을 확장해야 했지만 작은 악기 회사로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제닝스는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습니다. 1960년대 초반 로이스턴 그룹(Royston Group)이 모회사 Jennings Musical Industries에 투자한 뒤 경영권을 장악했고, 생산과 판매, 해외 진출을 둘러싼 의견 차이 끝에 1967년 제닝스는 회사를 떠났습니다. 개발을 이끈 딕 데니도 떠났고, 두 사람은 이후 다른 사업으로 악기와 앰프를 만들었지만 VOX라는 이름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틀스와 함께 성장한 덕분에 세계적인 회사가 됐지만, 그만큼 커지면서 외부 자본에 기대게 되어 창업자가 경영권을 잃은 아이러니입니다.

Q. VOX는 왜 트랜지스터 앰프를 만들었나요?

1960년대 전자산업에서 트랜지스터는 작고 가벼우며 예열이 필요 없고 유지관리에 유리한 미래 기술로 여겨졌습니다. VOX는 Conqueror, Defiant, Supreme 같은 트랜지스터 앰프를 저가형이 아닌 전문 음악가용으로 내놓았고, 비틀스도 이 시기의 VOX 트랜지스터 앰프를 썼습니다. 1967년 전 세계에 위성 생중계된 All You Need Is Love 공연에서도 VOX 트랜지스터 장비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록 음악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여, 기타리스트들은 진공관 앰프의 볼륨을 올렸을 때의 자연스러운 드라이브와 컴프레션을 더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일부는 오히려 오래된 AC30의 진공관 사운드에 매료됐습니다.

Q. 회사 주인이 바뀌는 동안 AC30은 어떻게 살아남았나요?

로이스턴 그룹이 재정난을 겪으며 VOX의 소유권과 운영 주체는 여러 번 바뀌었고, 1970년대에는 영국 악기 유통업체 로즈 모리스(Rose Morris)가 사업을 맡았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AC30이 남은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 앰프를 원하는 기타리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출력이 크지도, 가장 현대적이지도 않았지만 다른 앰프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소리와 반응이 있었고, 기타리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VOX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연주했을 때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였습니다.

Q. 브라이언 메이는 AC30을 어떻게 썼나요?

1970년대에는 더 강한 디스토션과 긴 서스테인, 대형 공연장의 고출력 마샬이 존재감을 드러내 AC30이 오래된 앰프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로리 갤러거(Rory Gallagher)는 트레블 부스터로 AC30을 강하게 밀어붙여, 고음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피킹 강약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고 자연스러운 드라이브와 배음이 실린 생생한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를 지켜보던 브라이언 메이는 공연 후 장비를 직접 물어볼 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고, 직접 만든 기타 Red Special과 트레블 부스터, AC30을 결합해 퀸의 풍부한 기타 화음과 긴 서스테인을 만들었습니다. 행크 마빈이 큰 공연장에서 선명한 소리를 위해 쓴 앰프를, 메이는 강하게 울렸을 때의 드라이브를 위해 쓴 것입니다.

Q. The Edge는 AC30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1980년대 U2의 The Edge는 화려한 속주 대신 적은 음과 딜레이로 독특한 리듬과 공간감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 오래 쓴 1964년산 AC30 Top Boost가 있었습니다. 빈티지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주와 이펙터에 반응하는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아끼던 AC30에 문제가 생겨 같은 모델로 대체했는데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는데, 그의 기타 테크니션 댈러스 슈(Dallas Schoo)는 오래된 앰프의 스피커와 특유의 컴프레션이 소리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모델이라도 스피커와 진공관 상태, 부품 특성, 오랜 사용으로 생긴 변화에 따라 소리와 연주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진공관 하나의 차이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메이와 The Edge는 같은 AC30으로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Q. 오늘날의 VOX는 어떤 회사인가요?

1992년 일본의 전자악기 회사 코르그(KORG)가 VOX를 인수했습니다. 의외로 보일 수 있었지만 코르그는 VOX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AC15와 AC30 중심의 진공관 계보를 이어가며 AC Custom과 Hand-Wired 시리즈로 발전시켰고, 동시에 모델링 기술의 Valvetronix 계열과 MINI GO 같은 소형 제품도 내놓았습니다. 과거 소리를 버리지도, 새 기술을 거부하지도 않은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VOX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유명한 앰프를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기타리스트들이 같은 앰프에서 선명한 클린, 자연스러운 드라이브, 이펙터와의 반응 같은 서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소리를 남겼기 때문입니다.